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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모음

정봉주, 그리고 미투

by 이슈 관찰자 2018.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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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의 미투건으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정봉주가 자백(?)을 했나보다. 양대포털 실시간 검색어에 그의 이름이 오르고 있고, SNS와 커뮤니티는 그의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앞서 먼저 2가지를 전제해야겠다. 

 

# 나는 나꼼수의 열렬한 팬이다. 

지금도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어준과 주진우의 팬이다. 그렇다고 정봉주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에 대한 이미지를 깨버리고, 국민 가까이에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만으로 그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가 싫어지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해온 기준으로 치자면 이번 사건이 비단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그의 잘못은 잘못대로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로 인해 정치적 생명이 끝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간이 더 지난 뒤에라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숱한 성범죄를 저지른 성누리당의 국개의원들도 여전히 정치 생명을 유지하며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난 정말, 당췌, 저 당 인사들과 관련한 미투가 안터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할 따름이다.) 

 

# 처음부터 피해자 A가 말했던 것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사건이 처음 시작됐을때 프레시안의 서기자가 보낸 카톡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이건, 사실일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100% 확신이 없다면 그런 류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이건 100% 사실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은 정봉주의 첫번째 대응 기자회견이었다. 방송을 통해 이해해온 그의 성격상, 정말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런식의 알리바이 중심의 해명을 하지는 않았을 뿐더러, 프레시안 뿐만이 아닌 피해자 A를 고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봉주는 프레시안과 일부 언론만 고소를 했고, 피해자 A는 고소하지 않았다. 정작 피해자 A는 고소를 원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명분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있고,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함이라 하였으나 구차한 변명인 것이다. 본인의 무고를 입증하려거든 피해자 A라는 당사자를 고소했어야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본인 스스로 구린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며, 무엇보다 이후의 모든 대응에서 '그런 사실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지속적인 알리바이 중심의 해명으로 일관한 것이 더더욱 이 일은 사실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의 지지자까진 아니어도 팬의 한 사람으로써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 하고싶은 것은 사건의 진실여부는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주목하고 있었던 것은 이 사건이 다른 미투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이었고, 그렇기에 이 사건이 이후의 미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봉주와 프레시안, 피해자 A 모두가 미투를 자신의 이해에 적절하게이용했으며, 본질을 훼손했다. 이게 결론이다. 

1. 프레시안이 이겼다?

처음 이 기사가 보도된 시점을 보고 '작정했구나.'싶었다. 엠바고가 너무나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피해자 A는 프레시안(A의 대학동문 서 모 기자)과의 인터뷰에서 폭로의 이유를 '이런 짓(자신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시도한)을 한 사람이 서울 시장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폭로를 결심했다고 한다지만 폭로의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정봉주는 이미 서울시장에 대한 도전 의사를 작년부터 내비췄고 대통령의 특별 사면이후 이를 공식화 했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저지하고자 하였다면 그가 공식적으로 서울 시장 출마를 말하였던 그 시점에 가장 먼저 폭로를 했으면 됐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 출마 선언 회견날을 보도 타이밍으로 잡은 것은 분명 '이해(利害)'의 논리인 것이다. 정봉주의 집중도가 가장 높을 타이밍에 폭로를 터뜨림으로써 주목받고자 하는 의도말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이 주목을 받는 대상이 누구였느냐이다. 당연히 정봉주는 폭격 수준의 주목을 받게 되어있었음은 뻔한 것이고, 그 반대쪽의 구성원들 중 피해자 A가 될지, 프레시안이라는 언론(서 모 기자 포함)이 될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주목도는 프레시안이 흡수했다. 일련의 다른 미투 사건과 다른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피해자보다 언론사가 부각된 지점. 그리고, 그 이후 쏟아낸 프레시안의 융단 폭격과 같은 정봉주 관련 기사들은 엠바고를 기점으로 그 뒤 일정 기간 이슈를 유지하기 위해 잘 짜여진 스케쥴에 맞게 착착 발행되는 느낌이었다. 이미 표면적인 결론은 정봉주가 사건 당일 해당 장소에서 사용한 카드 결재내역을 발견했음을 자백함에 따라, 희대의 사기극을 펼친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의미적인 차원에서 결론을 생각해보자. 이 사건을 통해 누가 이긴 것인가? 아니, 이겼다는 말이 맞기나 한가? 대체, 무엇을 얻었나? 정봉주는 깨달음을 얻었나? 프레시안은 광고 매출을 얻었나? 피해자 A는 명예를 회복했나? 대체 이 사건을 통해 어떠한 진전, 혹은 사회적인 인식의 환기, 혹은 발전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2. 정봉주 미투 사건의 특이점

 

일련의 미투 운동을 바라보며 했던 생각들이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통해 굳어진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열풍으로 번지는 미투 운동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나와 같은 일반 대중들은 과연 무엇을 소비하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흘러온 국내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우리가 주로 소비하는 것을 생각해봤다. 애석하게도, 아니 참 슬플 정도로 우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소비하는 것은 달랑 2개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 피해자 신상

2. 피해자가 당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 이후의 법적 처벌도 물론 관심사가 될 수 있느나 폭로단계의 그 파괴력에 비할바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봉주 미투 사건을 통해 위와 같은 것들을 소비했던가. 이 사건의 특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은 유독 피해자의 신상이나 피해 내용이 아닌, 여론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정봉주의 성추행 행위 자체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때가 맞네 마네, 거기에 갔네 안갔네, 내가 그때 수행을 했네 안했네, 프레시안이 소설을 쓰네 마네와 같은 내용들 말이다. 거기에 정봉주 지지자들과 반지지자들이 나뉘어 펼친 공방까지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미투 운동의 본질은 없어지고 누구와 누가 싸우고 있는지조차 헷갈리면서(마치 피해자가 프레시안인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진흙탕 싸움으로 가는 양상을 보였다. 나는 이 흐름들을 보며 왜 이런 식으로  사건이 흘러가고있나 의아하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태생적으로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정봉주 사건은 미투가 아니다. 

 

난 이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련의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이와 관련된 모든 기사(당연히 프레시안의 모든 기사는 포함된다)를 읽었고, 특히 정봉주 측과 피해자 A가 각자 자신들의 입장을 얘기하는 기자회견 및 인터뷰의 경우 일부가 발췌된 기사가 아닌 전문을 찾아 어휘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특이점을 느꼈는데, 그 특이점이 이 사건이 다른 미투운동이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미투 운동의 본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 전의 포스팅에서 미투운동을 창시했던 타라냐 버크의 말을 빌려, '미투의 본질'에 대해 다뤄보았다. 복기해 보자면, 자신이 당한 성폭력의 경험을 용기있게 드러내고, 이에 공감과 위로를 받고 유대하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 사건 직전에 터졌던 안희정 미투 사건과 비교해 생각해보았을 때, 이 사건은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점이란, 안희정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자신의 신변에 대한 두려움, 조직 내에서의 해결을 모색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아 맛봐야 했던 좌절감, 그리고 또 다시 반복된 성폭력이라는 이른 바, '업무상 위력'에 대한 성폭력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비단, 안희정의 사건 뿐 아니라, 문화 예술계 쪽에서 터져나온 대부분의 미투 역시 자신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는 가해자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겪게될 물적, 심적 피해를 두려워한 '업무상 위력'이 기반된 성폭력들이었다. 이는 사회적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박혀있는, 젠더이슈가 기반이 된 상급자 권력 중심의 심적, 물적 구조들에 대한 변화의 요구 말이다. 

하지만, 정봉주의 사건은 다르다. 피해자 A는 당시 대학생으로써 정봉주의 부름에 반드시 응해야 할 의무도 없었고, 업무상 위력을 당할 처지 또한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나간 A가 잘못했다는 결과론적 접근의 얘기가 하고픈 것은 아니다. 수감 직전이라는 특수성에 인간적 선의로써 충분히 응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분명 다른 미투 사건들 처럼 '업무상 위력'이 존재하는 관계는 아닌 개인의 선택이 더 크게 작용할수 있다는 지점에서 이 사건은 미투 운동으로 보기보다는 나이차 많이나는 아재의 추잡한 성범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다. 정봉주는 정봉주대로 과거에 피해자 A에게 어떤식으로든 피해를 줬고, 개인의 야욕을 위해 거짓 변명을 한 꼴이 되었다. 그렇다고 프레시안과 피해자 A가 사회의 큰 변화를 이끌어냈나? 아니라고 본다. 그들이 사회적 변화의 목적성을 띄고 있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단지, 정봉주라는 '가해자'가 잘되는 꼴이 보기 싫었고, 그 꼴을 보지 않기 위해 했던 이 폭로는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대적 사안에 맞물려 '미투 운동'으로 포장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피해자의 경험은 그 자체로 인정되고, 위로받아야 마땅하나 이것이 미투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미투이고 아니고가 뭐가 중요하냐 생각할수도 있겠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의 미투 운동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지를 생각해본다면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또 다시 미투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마주하게된다. 어디까지가 미투이고, 미투가 아닌지 그 기준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는 미투 운동이 번진 이후 계속해서 제기되어 오던 문제였다. 일전의 포스팅에선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냐 버크의 인터뷰를 인용해 언급했었으나 국내의 현실에 적합한 기준을 찾아보다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언급한 국내 미투 운동의 기준에 대해 정리해본다. 개인적으론 이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에 따라 정봉주 사건 자체는 미투 운동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1) 권력 관계 하에서 발생 했을 때

2) 직업적 가치가 훼손되거나 현재와 미래의 직업적 가치가 훼손됐을 때

3) 성범죄가 동반될 때

 

4. 이른 바, '미투 공작론'에 대해

 

이 쯤에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겠다. 정봉주 사건이 터지자마자 그의 지지 세력에서 바로 들고 나온 것이 '미투 공작론'이었다. 즉, 미투를 활용해 의도적인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레시안이나 그 소속의 서기자, 피해자 A가 그정도까지 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어보인다. 피해자 A가 반대 세력에게 사주를 받았다느니, 프레시안이 사주를 받았다느니 하는 소리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등장하는 더민주의 인사들이 그리 만만한 인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2선을 달성하고 현재 서울시장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원내대표를 역임한 우상호, 전투력으로는 최고치를 갱신하는 박영선 등이 그들인데 정봉주가 그들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일 수 있을까. 정봉주가 오랜시간 정치권 밖에서 활동하며 저변을 넓혔다고는 하나, 실제 선거로 접어들면 투표권자들은 그를 찍을 확률이 높진 않아보인다. 대표자를 뽑는 기준에는 리더쉽의 이미지- 무게감이라거나 근엄함, 혹은 진중함과 같은 것들 - 가 크게 작용하는데, 정봉주는 그 측면에선 정치권을 떠나 있던 시간동안 이미지가 가벼워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를 지지할 계보도 세력도 민주당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안민석 정도가 유일하려나...) 어쨌든, 그렇기에 반대 세력에서 그를 이 정도 기획으로 날려버릴만한 이유는 딱히 없어보인다. 결정적으로 하나 있었다면, BBK사건과 관련된 것인데 과거 17대 대선에서 저격수 역할을 했던 그인지라 당시의 일들이 모두 까발려질 경우의 두려움 때문에 그를 날렸다는 의견도 있으나, 앞서 말했든 더민주의 서울시장 후보군엔 당시 함께 저격수 역할을 했던 '독사' 박영선도 있기에 이 역시 그닥 설득력이 있어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건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투 공작론'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미투에 대해 공작론을 제기했던 인물은 김어준이다. 정확히 말해 미투가 음모라는 것이 아니라, '미투를 공작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해당 방송을 구독하는 내 입장에선 저 말이 왜 논란이 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으나, 방송의 전체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뽑아내는 헤드라인 몇줄만 가지고 선비질을 해대는 몇 몇 인물들(더민주의 금 모, 표 모 같은)이 있는데 이들에게 제발 맥락좀 짚고, 실상을 파악해보고 말하라고 그들의 SNS에 기재했다. 미투는 공작의 관점으로 바라봤을때 정말 활용하기 좋은 소재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며, 실제 미투 사건 중 가장 충격파가 컸던 이윤택사건이 터지자마자 네이버의 검색 지면엔 '문재인 친구 이윤택'이 키워드가 되는 댓글들이 어마어마하게 도배가 되었다. 이후 등장했던 여러 인사들의 미투에도 이와같은 프레임은 마찬가지로 돌았다. 어떻게든 문재인과 엮어서 공격하려는 의도의 기사와 댓글들이 엄청난 양으로 도배된 것이다. 아예 자한당은 논평이나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미투 사건에 문재인 정권과 어떻게든 연관성을 억지스럽게라도 엮어내려는 노오력까지 시전하였으니 이쯤되면 미투가 공작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피해자들에 대한 압박이니 뭐니 하는 선비같은 소리를 해대는 부류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기도 싫어진다. 

 

5. 정작 미투를 이용하고 망치는건

 

다시, 정봉주의 미투 사건으로 돌아와 본다. 이 사건은 미투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미투라는 포장으로 둔갑해 미투의 본질을 훼손했다. 이 훼손의 중심엔 사건의 당사자들과 언론이 있었다. 아이러니 한 점은 이들 모두 미투를 지지한다면서도 정작 미투를 가장 더럽게 훼손한 장본인들 이라는 점이다. 

먼저, 당사자들인 피해자 A나, 프레시안, 정봉주 모두가 촛점을 빗나간 채 알리바이 싸움만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피해사실 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가해 의도에 대한 부분은 아무것도 조명받지 못했고, 결국 일정 시간동안 양쪽 모두를 몹쓸 X로 몰아붙이는 여론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앞에서도 말했듯 미투가 아닌 건으로 미투를 운운하며 다른 미투 피해자들이 받아야할 집중도를 모두 짚어 삼켜버렸고, 이에 대해 미투에 대해 지지하던 사람들 조차 미투 피로감을 호소하게 만든 가장 큰 장본인들 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언론이다. 미투가 등장 할 때마다 언론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행태를 보였는데, 나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자신들의 이해에 맞춰 미투를 도구화했다.

소재 자체가 자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범죄사실이고 이를 당한 피해자는 끔찍한 기억을 복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 기사들의 헤드라인들은 거의 포르노 수준의 헤드라인들을 뽑아낸다. 이를 테면, 피해자가 당한 특정 행위들, 예를 들어 '치마 아래로 손을...', '한참 어린 여성의 xx를'와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인데 이는 철저히 클릭을 유도해 언론사 트래픽을 늘리려는 개같은 수작이다. 양질의 기사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기들의 이해를 위해 미투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패륜적인 행태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것이 먹히니 반복적으로 같은 짓을 한다.

 

2) 실질적인 2차 피해의 온상이 되었다.

위와 같은 맥락인데, 자극적인 피해 행위 중심으로 기사를 구성하면서, 그 자극적인 행위에만 촛점이 맞춰져 확산된다. 문제는, 국내 미투 운동의 일종의 공식이다. 마치 국내에서 미투로 인정받으려면 개인 신상을 까야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피해 사실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개인 신상을 밝히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냥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이 역시 언론이 만들어 낸 것이다. 자신들의 보도 '객관성'과 '정보력'과 '공신력' 따위를 입증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하나의 '도구'로써 피해자들을 대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선 자신의 개인 신상에 구체적인 피해 행위까지 더해져 알려지면서 2차 피해를 당하는 더 끔찍한 일을 겪게 되는 격이다. 언론들이야 좋을 것이다. 지네 언론사에서 처음으로 피해자가 실명을 밝히거나 직접 출연해 인터뷰에 응한다는게 얼마나 큰 트래픽(또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이것이 영업 포인트로 얼마나 좋은지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그 한번의 인터뷰로 인해 평생 색안경낀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오롯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몫이다.  '저희 0000 뉴스에서 단독으로 피해자 000씨를'등과 같은 멘트나 '본지 단독, 000 성폭력 피해자 000씨 단독 인터뷰'따위의 본인들의 이해관계가 너무나 명확하게 적시된문장을 날리는 그들이 역겹다. 

 

 

여러 미투 사건 중, 이 사건을 다룬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이 앞으로의 국내의 미투 운동에 대해 지니는 영향력 때문이다. 본질은 쏙 빠진 채, 가장 격렬하게 대립된 사건이자 가장 지리했던 싸움이며, 그로 인해 미투의 동력과 지속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국내 미투 운동의 기준에 빗대어 볼 때, 이 사건은 미투라고 하기도 적절치 않은 사건이라는 점이다. 정작 미투가 아닌 사건이 미투로 포장되어, 미투의 본질도, 동력도 상당히 날려버린 것만은 분명하다.

 

정봉주의 자백(?) 이후, 언론들은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영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주 방송에서 정봉주의 알리바이를 두둔하는 식의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다. 또 김어준을 날려버릴 한건을 잡았다고 잡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여러모로 김어준은 언론쪽 인사들과 정치권 인사들에겐 무척이나 꼴보기 싫은 대상인듯 싶다. 이들의 공통점은 엘리트 패권주의에 젖어있는, 자신들만의 세계와 사상에 빠져 지들이 하는 생각과 말만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인간들이라는 점이다. 이유가 뭐가됐건 자신들은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하고,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저지르는 그이기에, 그래서 자신들에게 돌아와야할 모든 집중도를 스틸해가는 그이기에 아니꼬와 미쳐 죽겠다는 반응들이 느껴진다. 그들이 말대로 '일개 야인'에 지나지 않는 인물 하나 죽이는 일에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 에너지가 있다면, 이명박근혜 9년간 쌓인 적폐들을 청산하는 일에 그 에너지를 의미읬게 쏟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국민이자 언론 소비자로써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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